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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입맛 따라 바뀌는 기준…“어느 장단에 춤춰야”[경평의 시간③]


입력 2024.04.14 07:00 수정 2024.04.14 07:00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공공기관 경영평가 4월부터 본격 시작

정권 바뀔 때마다 평가 점수 기준 수정

정부, 사회적 기능 대신 ‘재무성과’ 강조

“매번 기준 바꾸면 본연의 역할 못 해”

기획재정부 전경. ⓒ데일리안 DB 기획재정부 전경. ⓒ데일리안 DB

“재정 상태만 보면 나빠진 게 맞다. 그것만 기준으로 한다면 (평가) 등급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국제유가가 1년 내내 역대급 수준을 유지했다. (전임) 정부가 물가 인상을 이유로 요금 동결을 주문해 놓고 갑자기 (정권 바뀌었다고) 재무 상태를 이렇게 강조하면 우린들 어쩌겠나.”


지난해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에너지 공기업들은 줄줄이 ‘철퇴’를 맞았다. 한국전력공사는 보통(C)에서 미흡(D)으로 등급이 떨어졌다. 2021년 평가에서 공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탁월(S) 등급을 받은 한국동서발전은 무려 두 단계나 떨어져 양호(B)를 받았다. 그 외 한국남동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중부발전 모두 우수(A)에서 B, C로 하락했다.


에너지 공기업 경영평가 등급이 줄하락 한 가장 큰 이유는 ‘재무성과’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집권 후 사실상 처음 경영평가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기준을 바꿨다. 윤 정부는 당시 공공기관들 재무성과 배점을 기존 10점에서 20점으로 두 배 올렸다.


반면 공공성과 관련한 ‘사회적가치구현’ 배점은 기존 25점에서 15점으로 대폭 낮췄다. 전임 정부 때는 사회적 역할 덕분에 재무위험 기관으로 선정됐던 11개 공기업도 최소 C 등급은 유지할 수 있었으나, 개정된 기준에서는 줄줄이 등급 하락을 피하지 못했다.


경영평가 기준을 바꾼 것은 윤 정부뿐만이 아니다. 문재인, 박근혜, 이명박 정부 때도 다들 평가지표를 수정했다. 사실상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입맛대로’ 기준을 바꿔온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 공공기관 부채 비율은 경영평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오히려 정권 역점사업을 얼마나 열심히 실행하는지가 관건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에 평가지표를 바꾸면서 ‘부채 감축’과 ‘방만 경영 해소’에 방점을 찍었다. 현 정부와 같은 궤적이다. 그 결과 2012년 16곳이 A 등급을 받았는데, 2013년에는 2곳에 그쳤다. C 등급과 D 등급도 각각 39곳에서 46곳, 9곳에서 18곳으로 늘었다. E도 7곳에서 11곳으로 많아졌다.


잦은 기준 변경, 공공기관 중장기 목표 ‘흔들’


문재인 정부는 공공성을 강화했다. 좋은 일자리 창출과 질적 개선 노력에 대한 가점(10점)을 신설했다. 경영관리부문 효율성 배점을 낮추고 일자리 등 공공성 관련 지표를 확대 도입했다.


문 정부가 평가 기준을 바꾸면서 2016년 12.6% 수준이던 A 등급은 10.6%로 줄었다. B 또한 40.3%에서 35.8%로 감소했다. C는 31.0%에서 38.2%로 많아졌다. D와 E는 각각 11.1%, 4.8%에서 8.5%, 6.9%로 달라졌다. 2016년 0.2%였던 S등급은 2017년 한 곳도 없었다.


이번 정부들어 평가 기준을 재무성과 중심으로 바꾸면서 기관 성격에 따라 일부 공기업들은 등급 줄하락을 피하지 못했다.


공공기관은 정권마다 바뀌는 평가지표가 반가울 리 없다.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는 임직원들 성과급을 나누게 된다. 적게는 수백만원이지만 임원급들은 ‘억’ 단위가 차이 나기도 한다. 나아가 사장이나 이사장과 같은 대표들은 ‘자리’를 내놓을 수도 있다.


한 공공기관 임원은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평가) 기준을 바꾸면 5년마다 공공기관 목표와 전략을 수정하라는 의미인데, 이 경우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관을) 운영하는 건 불가능해진다”며 “잦은 기준 변경은 결국 공공기관의 공익적 목적이나 본래 기능을 흔드는 부작용이 더 클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공공기관 관계자는 “우리는 기관을 만든 목표 자체가 정부의 사회적 역할을 현장에서 뒷받침하기 위해서인데 어떻게 돈을 기준으로 기관 업적을 평할 수 있겠냐”면서 “기관마다 성격이 다르고 목표가 다른 건데 경평(경영평가)은 그런 특수성이나 상대성을 고려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길들이기 수단 아닌 ‘국민 기관’ 기준 만들어야 [경평의 시간④]에서 계속됩니다.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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