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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등 발전 공기업 사장 ‘관피아·한피아 싹쓸이'…11곳 모두 관료·한전 출신이 차지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1.06.07 16:14

-한전 정승일 사장, 또 산업부 차관 출신



-국내·뉴욕증시 상장기업이지만 전기요금 등 항상 정부 규제 받아



-한전 자회사 자산 총액 상위 10곳 사장, ‘한전 아니면 산업부' 출신



-"에너지전환, 신산업 외치지만 혁신 기대 어려워"

한전+10

▲한국전력 자산총액 기준 상위 10개 자회사 현황.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교체를 마무리한 발전 공기업 신임 사장 자리를 감독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모기업 한국전력 출신들이 싹쓸이했다.

한전과 한전 산하 발전 공기업 10곳 등 11곳 중 7곳을 한전 출신이, 4곳은 산업부 등 관료 출신이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독부처 관료나 모기업 직원 출신이 산하 기관장 자리로 가는 것에 대해 업무 전문성·효율성 등을 고려, 불가피한 조치라고 산업부와 한전 측은 설명한다.

그러나 친정에서 일할 만큼 하고 나서 산하기관에 낙하산으로 내려오는 것에 곱지 않은 시선이 많다.

특히 관료나 한전 직원을 내려보내는 곳이 아무리 공기업이라고 해도 산업부와 한전이 이런 인사를 통해 산하기관을 지배함으로써 산하기관의 독립성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새로 취임했거나 취임예정인 발전 공기업 신임 사장들은 정부 부처에서 ‘별’이라고 하는 1급 이상, 한전에서 임원 또는 임원대우를 받는 본부장 이상 고위직으로 60세 정년을 지났거나 앞두고 자리를 옮겼다.

문재인 정부가 ‘정의로운’ 에너지전환, 에너지신산업 육성을 외치고 있지만 여전히 ‘관피아(관료+마피아)·한피아(한전+마피아)’가 발전공기업 사장을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발전 공기업이 이처럼 ‘그 나물에 그 밥’인 상태로는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새 발전 공기업 사장들은 문재인 정부 임기를 1년 안팎을 남겨둔 시점에 실시한 현 정부의 사실상 ‘알박기 인사’란 비판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태로는 국내외에서 제기되는 한전 민영화 등 전력산업 구조개혁은 한낱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꼬집는다.

7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한전KPS가 최근 신임 사장에 김홍연 전 한전 본부장을 내정되면서 한전 산하 자회사 중 자산총액 상위 10개사의 사장 중 6명이 전직 한전 부사장 혹은 본부장으로 채워졌다. 김회천 한국남동발전 사장은 전 경영지원부사장, 박형덕 한국서부발전 사장은 전 수석부사장, 김성암 한국전력기술 사장은 전 부사장, 김홍연 한전KPS 사장은 전 서울지역본부장, 최익수 한전원자력연료 사장은 전 대전충남 본부장, 김장현 한전KDN 사장은 전 서인천지사장 출신이다.

한전의 시장 독점을 막기 위해 2001년 발전과 판매 분야를 나눈 전력산업구조 개편이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했지만 여전히 모회사인 한전이 사실상 지배하는 구조다. 일각에서는 자회사 사장직은 한전 고위직을 위한 자리라는 시선도 있다. 한 전력업계 관계자는 "모회사-자회사 관계인 만큼 한전 출신이 갈 수는 있지만 정년을 앞뒀거나 이미 퇴임 직후 가는 게 문제"라며 "내부 출신이나 외부의 혁신적인 인물이 선임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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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출신이 아닌 자회사는 대부분 산업부 관료 출신이다. 정승일 한국전력 사장은 차관,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차관보, 이승우 한국남부발전 사장은 국가기술표준원장(1급)을 각각 지낸 산업부 관료 출신이다. 김영문 한국동서발전 사장은 지난해 4.15 총선 때 집권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사실상 정치인이지만 검사로 공직을 시작해 기획재정부 소속 관세청장(차관급) 지낸 관료 출신이다. 김호빈 한국중부발전 사장은 유일한 내부 승진 케이스지만 그 역시 한전에서 직장을 시작했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지난 5년 동안 에너지자원실장·가스공사 사장·산업부 차관에 이어 한전 사장으로 이어진 정승일 사장의 경력은 화려하지만 공직자윤리법의 취지에는 맞지 않는 ‘관피아’라는 논란은 피할 수 없다"며 "한전의 경영을 악화시킨 탈원전·탈석탄 정책과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진두지휘했던 산업부 차관 경력에 대해서도 노조가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전력산업에 대한 철학과 조직운영에서 노조의 공감을 얻어 조직을 안정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인터넷, IT강국으로 평가받고 있음에도 전력이나 에너지 산업 분야에서는 스타트업이라고 할만 한 기업이 거의 없는 것은 이같이 경직적이고 폐쇄적인 전력시장 구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한전은 국내는 물론 미국 뉴욕 증시에도 상장된 주식회사이지만 경영활동의 기본인 전기요금 책정부터 정부가 사실상 좌우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다 보니 산업부 고위 관료 출신 인사가 사장을 맡아 제대로 된 기업경영에는 안중에도 없이 정부 눈치나 보고 정부 정책에 맞장구 치는데 급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에너지공대 건설이라고 한다. 이를 주도한 직전 김종갑 사장은 물론 그 전임 조환익 사장은 모두 산업부 차관 출신이다.

전력산업은 100여 년 전 탄생 이후, 큰 변화 없이 유지돼왔다. 절대다수의 소비자는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지불하면 될 뿐이었다. 수직적 위계질서 속에서 정부는 에너지 안보와 산업 발전 등을 고려해 충분한 에너지원이 적절하게 공급될 수 있도록 총괄 책임의 역할을 맡아왔고, 수직통합 구조인 한전은 그 계획에 맞춰 발전, 송배전 설비를 구축해 운영해왔다. 2001년 발전시장에 경쟁이 도입돼 한전의 발전 부분은 자회사로 분리되고 민간 발전회사가 출현하였지만 큰 틀의 변화는 없었다. 사업 방식도 여전히 그대로다.

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에너지업계에서는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 손정의의 소프트뱅크 같은 회사가 나올 수 없는 구조"라며 "에너지전환 정책이 무색하게 여전히 국내 전력시장은 소수의 전문가 집단이 타워 위에 앉아 알아서 전력을 생산하고 전달해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에너지전환을 외치며 소비자가 전력을 생산하는 에너지프로슈머, 수요관리, 분산형 전원을 외치고 있지만 정작 전력산업을 주관하는 산업부와 한전, 발전자회사들은 변화의 동기보다는 위계질서를 유지하며 피라미드 꼭대기 위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에만 관심이 여전히 머물러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 신임 발전사 사장들의 취임사를 봐도 정부 정책에 따라 회사의 주력사업인 석탄화력 발전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를 많이 늘리겠다는 목표만 내세울 뿐 구조적 혁신에 대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상엽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에너지 분야 ICT 신기술이 발전하려면 다양한 에너지 신사업 비즈니스 모델이 확대될 필요가 있는데, 현행의 독점적 시장 구조는 이를 방해하고 있다"며 "한전의 독점이 민간의 시장 접근을 차단하고 에너지 신사업 생태계 조성을 방해하며 과도한 전력 소비를 발생시킨다"고 지적했다.

발전공기업 측은 이같은 지적에 대해 구조상 어쩔 수 없는 문제라는 입장이다. 한 발전공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한전의 최대 주주인 데다 사장 임명권도 청와대가 가지고 있는 만큼 정부의 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모회사인 한전이나 다른 자회사들도 다들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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