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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은 왜 우리만…” 공공기관 개혁안에 내부 불만 ‘부글부글’


입력 2022.10.17 14:50 수정 2022.10.17 14:53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기재부, 공공기관 예산·복지 제도 개편

업무추진비 줄이고 자녀학자금도 축소

공공기관 “지나치게 일방·획일적” 반발

전문가 “창의성 키우는 게 진짜 ‘혁신’”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은 지난달 전국 공공기관 인근에 내건 현수막을 통해 정부의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이 공공성을 무시하고 효율화만 강요한다며 즉각 철회를 요구했다.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은 지난달 전국 공공기관 인근에 내건 현수막을 통해 정부의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이 공공성을 무시하고 효율화만 강요한다며 즉각 철회를 요구했다.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정부가 공공기관 혁신안 마련에 속도를 높이면서 대상 공공기관 내부 불만도 커지고 있다. 출장비와 업무추진비 등 경상경비 삭감과 함께 직원 복리후생 부문에 대한 강도 높은 개혁을 요구받자 불만의 목소리가 바깥까지 새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17일 제14차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를 열어 내년까지 350개 공공기관 경상경비 1조1000억원을 줄이기로 했다. 더불어 자녀학자금 지원과 사내대출 등을 제한하는 내용의 공공기관 예산 효율화·복리후생 개선 계획을 확정했다.


혁신안을 확정함에 따라 공공기관은 업무추진비 등 예산은 물론 휴가·휴직, 사내대출, 자녀학자금, 경조사비 등 직원 복리후생 혜택도 상당히 줄어들게 됐다.


정부 공공기관 혁신 계획에 기관 구성원들은 “지나치게 일방적이고 과도하게 획일적”이라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개별 공공기관이 갖는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체 정부가 일방적인 기준으로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공기관 평가와 경영 지침이 달라져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실제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윤리와 안전 경영에 중점을 두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을 중요하게 여긴데 비해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정원 감축과 부채 축소 등 조직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전혀 다른 요구를 한다는 게 공공기관 주장이다.


한 준정부기관 관계자는 “수십 년 미래를 내다봐야 할 공공기관 경영 철학이 5년짜리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고 있는 현실”이라며 “이렇게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상황에서 소신있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기타 공공기관 관계자 또한 “기관마다 목적과 규모, 예산이 다르고 씀씀이는 더더욱 차이가 난다”며 “우리처럼 작은 기관들은 가뜩이나 경상경비 부족에 허덕이는 데 이걸 더 줄이라고 압박하니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나”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혁신안에 대한 불만은 정부출연연구기관도 마찬가지다. 특히 과학기술계 연구기관 관계자들은 정부가 요구하는 정원 감축이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한 과학계 연구기관 관계자는 “기재부가 이렇게 쥐어짜는 방식으로 혁신을 밀어붙이는데 인력과 예산을 무조건 깎기만 한다면 나중에는 기관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며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일률적인 공공기관 혁신안을 폐지해야 옳다”고 강조했다.


그는 “윤 대통령이 과학기술 발전을 후보 때부터 약속해 왔는데 정작 공공기관 혁신은 반대로 가고 있다”며 “현재 가이드라인은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공공기관에 대한 무지(無智)를 바탕으로 하는 것”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공기관 노동조합은 정부의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을 ‘민영화’ 수순으로 규정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공공부문 노조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은 고장 난 나침반이자, 최소한의 균형감도 보이지 않는다”며 “공공기관 민영화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다”고 날을 세웠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감세 정책으로 부족해진 세수를 공공기관 허리띠를 조르는 방식으로 메우려 한다고 비판했다. 더불어 기관장 낙하산 인사 등 공공기관의 가장 악질적이자 고질적인 병폐는 뒤로하고 가장 손쉬운 대상에게 희생을 강조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입사 15년 차 한 공공기관 임직원은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할지 몰라도 공공기관 혁신은 그동안 늘 진행해 왔다. 오랜 세월 혁신을 거듭하면서도 여전히 공공기관에 많은 문제점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인 것”이라며 “지금처럼 낙하산 인사가 계속된다면 이번 혁신안도 사실상 무용지물이 될 거라고 본다”고 했다.


외부 전문가들도 공공기관 혁신이 강압적이어서는 기대한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고 조언했다. 고길곤 서을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공공기관 혁신은 정부의 강요된 가이드라인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공공부문보다 민간부문 혁신 아이디어가 더 충만한 것은 자유를 포기하고 순종하는 대신 문제 해결을 위해 스스로 무엇인가를 만들고자 하는 기업가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압적 혁신보다 창의성을 키워 진짜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다.


고 교수는 “실패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유 의지에 따라 판단하고 책임을 지려는 기업가의 용기는 아무나 갖는 것이 아니다”며 “이번 정부가 진정으로 자유를 국정에 구현하고자 한다면 혁신의 자유를 관료와 공공기관에도 허락해야 한다. 그 자유가 피터팬 증후군에 빠진 관료와 공공기관을 스스로 책임지는 어른이 되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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