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경영평가 독립성·보안 강화하려다…검증시스템에 구멍

38년된 경영평가 초유 사태 속사정 들어보니
①감사원 감사에 위축→기재부 ‘노터치’로 구멍
②4년 전 사전 유출 사태→보안 강화돼 점검 부족
③준정부기관만 오류 발생→평가단 느슨한 점검도
  • 등록 2021-06-28 오전 4:00:00

    수정 2021-06-28 오전 4:00:00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신뢰가 크게 훼손된 점에 대해 경영평가를 총괄하는 기관으로서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안도걸 기획재정부 2차관은 지난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이같이 말하고 고개를 숙였다. 공공기관의 ‘경영 성적표’로 지난 18일 발표한 경영실적 평가결과가 무더기로 틀렸기 때문이다. 10개 공공기관의 종합등급이 바뀌었다. 경영평가가 1984년에 도입된 이후 38년간 평가과정상 오류를 이유로 최종 성적표를 무더기로 수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안도걸 기획재정부 2차관이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평가점수 산정 과정에서 발생한 실수로 이미 발표한 평가 결과가 수정되는 등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신뢰가 크게 훼손된 점에 대해 경영평가를 총괄하는 기관으로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왜 기재부 사전점검에 구멍이 뚫렸나

정부가 131개 기관(올해 기준)을 대상으로 매년 실시하는 경영평가는 공공기관들에겐 사활이 걸린 일이다. 기관장 해임 권고까지 가능한데다 직원들 입장에서도 평가 결과에 따라 1인당 성과급이 많게는 수천만원 씩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공공기관판 수학능력시험(수능)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27일 이데일리가 기재부, 공공기관, 평가단 등을 종합 취재한 결과, 올해 사상 초유의 평가 오류 사태가 벌어진 것은 크게 3가지 원인 때문이다.

올해 경영평가단은 교수 등 외부 전문가 108명으로 구성됐다. 3~6월에 수차례 실사·보고회·회의, 평가위원→간사→단장 점검을 거쳐 경영평가단이 정한 등급을 기재부에 통보했다. 기재부는 이를 점검한 뒤 지난 18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주재로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를 열고 등급을 최종 확정했다.

기재부는 공운위가 끝나고 공공기관에 등급을 통보하는 과정에서 오류를 처음으로 인지했다. ‘이렇게 등급이 낮게 나온 게 이상하다’는 공공기관 이의제기가 잇따라서다.

이후 기재부·평가단·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재점검한 결과, 외부 평가위원들이 점수를 기록하는 최초 ‘기표작업’부터 오류가 있었다. 사회적 가치 지표 관련 평가배점을 잘못 적용하고, 평가점수 입력을 누락한 것이다.

그럼에도 수없이 관련 업무를 처리해온 기재부 공무원들이 이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당시 상황을 들여다보면 감사원이 진행 중인 경영평가 감사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감사원은 기재부를 대상으로 기재부가 임의대로 공공기관 경영평가 점수에 손을 댔다는 의혹 제기에 대한 감사를 진행 중이다.

이에 기재부는 올해는 경영평가 업무를 평가단에 일임하고 가능한 관여하지 않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에 기재부가 전반적인 평가 결과는 훑어봤지만 평가위원들이 정리한 평가 자료 등 구체적인 내용은 점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기관 관계자는 “최대한 독립성을 보장하겠다는 좋은 취지였지만 감사원 감사에 위축되다 보니 점검에 구멍이 뚫린 것”이라고 말했다.

보안 강화할수록 점검 소홀해지는 ‘딜레마’

경영평가 보안이 강화된 것도 영향을 끼쳤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2017년 6월 경영평가 결과가 사전에 유출돼 비난을 받았다.

이 사건 이후로 기재부는 내부적으로 최소한의 인원만 경영평가 결과를 확인하도록 했다. 경영평가를 받는 공공기관에도 보안 때문에 일부 평가결과만 사전 공유했다.

이후 유출 사건은 사라졌지만 사전에 잘못된 평가결과를 걸러낼 수 있는 장치 하나를 또 잃었다. 다른 공공기관 관계자는 “기재부가 경영평가 보안을 강화할수록 사전 점검이 소홀해지는 딜레마에 빠졌다”고 했다.

준정부기관 평가에서만 무더기로 오류가 발생한 것도 이유가 있었다. 공기업 경영평가는 행정업무에 잔뼈가 굵은 박춘섭 전 예산실장이 단장을, 기재부 예산실 서기관 출신 유승원 경찰대 교수가 간사를 맡아 사전 점검을 깐깐하게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교수 중심으로 꾸려진 준정부기관 평가단은 공기업 평가단보다 점검이 느슨했다. 준정부기관 평가단장 및 담당 간사·평가위원은 해촉됐다.

기재부는 ‘경영평가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평가지표 △평가방식 △평가조직을 개편하는 종합적인 경영평가 개선방안을 8월까지 발표하기로 했다. 안도걸 차관은 기재부 책임론에 대해 “(기재부도) 크게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추가적인 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행정 오류에 책임을 묻는 게 불가피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영평가 신뢰를 높이는 후속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공기업 경영평가단장을 맡았던 신완선 성균관대 시스템경영공학과 교수는 “감사원 감사에 위축될 게 아니라 이참에 경영평가 사전점검을 강화하는 등 관리 개선방안을 확실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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