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성이냐 기업성이냐, 공기업의 딜레마

김태일 고려대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
[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공공성이냐 기업성이냐, 공기업의 딜레마

매년 6월 중순이 되면 공기업 종사자들의 신경이 곤두선다. 6월 중순에서 하순 사이의 어느 날, 공기업 경영평가 결과가 발표되고 이에 따라 임직원 성과급 액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경영평가 결과는 S부터 E까지 6개 등급으로 제시된다. 올해는 36개 공기업 중 동서발전이 최우수등급인 S를 받았으며 절반인 18개 공기업이 C 이하 등급을 받았다. C 이하 등급을 받은 공기업의 면면을 보자. 작년에 엄청난 적자를 봤고, 그래서 최근 요금인상으로 논란이 되었던 한국전력은 C를 받았다. 작년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로 물의를 빚었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D를 받았다. 그리고 작년과 올해 초 열차탈선사고가 발생한 코레일은 유일하게 최하등급인 E를 받았다.

김태일 고려대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

김태일 고려대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

민간기업의 경영성과는 시장에서 판가름 난다. 수익을 많이 내면 성과가 좋은 것이고 반대면 나쁜 것이다. 별도의 평가를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왜 공기업은 별도로 경영성과를 평가해야 할까? 시장에서 올리는 수익만으로 성과를 판단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공기업은 대부분 독점기업이다. 동일 업종에서 다수 기업이 경쟁하는 민간과는 다르다. 게다가 이들이 공급하는 재화와 서비스는 국민 생활에 필수적이다. 전기요금이 비싸도 이용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 해외에 나가려면 인천공항을, 제주도에 가려면 제주공항을 이용해야 한다. 부산에 가려면 열차를 타거나, 자가용을 몰고 가더라도 고속도로를 이용해야 한다.

정부 정책에 동원돼 수익성 뒷전

필수재를 독점하는 기업이 수익을 많이 내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격을 올리면 된다. 가격이 올라가도 다른 방도가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구매해야 한다. 기업이야 좋겠지만 소비자인 국민은 피해를 본다. 그래서 필수재 독점기업은 민간 대신 공공이 소유하고 운용한다.

공공이 맡으면 수익을 내려고 일부러 가격을 올릴 염려는 없다. 하지만 충분히 예상되는 부작용이 있다.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것이다. 경쟁이 없고 주인도 없다. 기업은 망할 위험이 없고 직원은 잘릴 염려가 없다. 도대체 열심히 일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직원이 설렁설렁 일하는 것도 문제지만, CEO를 비롯한 임원진이 혁신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다.

공기업 경영평가는 1980년대에 시작되었으니 거의 40년의 역사를 지닌다. 애초에는 공기업들이 주관부처 지시대로만 움직이고 능동적인 경영 마인드가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경영에는 자율성을 부여하되, 성과를 평가하여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로 시작했다. 이후 경영평가는 CEO와 임직원이 가장 신경 쓰는 업무가 되었다. 평가 덕에 실제로 얼마나 부지런히 일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점수를 잘 받기 위해 무진 애를 쓰게 된 것만은 확실하다.

경영성과가 높은 공기업은 어떤 모습일까. 경쟁이 치열한 민간기업처럼 움직일 것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 소비자 선택을 받으려면 제품의 질은 높이고 가격은 낮춰야 한다. 그러려면 끊임없이 혁신을 고민하고 효율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흔히 공기업은 공공성과 기업성을 갖춰야 한다고 얘기한다. 기업성의 핵심은 수익을 내는 것이다. 공공성의 핵심은? 소비자인 국민에게 질 좋은 제품을 효율적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즉 공공성의 대상은 국민이고 목적은 국민의 효용 극대화이다. 물론 소비자뿐만 아니라 생산자도 국민이다. 그래서 공기업 직원의 복지 향상, 협력기업에 대한 적정한 처우 등도 공공성 항목에 포함된다. 그러나 핵심은 질 좋은 제품을 효율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경영평가는 공공성과 기업성을 높이는 데 얼마나 기여했을까. 뜻밖에도(혹은 예상대로?)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부가 공기업 공공성을 왜곡한 데 있다. 역대 정권 중 몇몇은 정부 정책에 동원하는 것을 공공성이라고 강변했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을 진행하면서 수자원 공사한테 8조원짜리 사업을 떠넘겼다. 또 광물자원공사, 석유공사, 가스공사를 자원외교에 동원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은 소위 인국공 사태를 야기했다. 탈원전 정책에 적극 동참한 한국수력원자력은 경영평가에서 줄곧 높은 점수를 받았다. 정부 정책목표 달성에 동원되다 보니 ‘질 좋은 제품의 효율적 제공’은 뒷전으로 밀렸다.

경영평가 개편 초점 수익성에 둬야

공공성과 기업성 비중도 정권마다 달랐다. 공공성은 ‘사회적 가치’ 항목에서 주로 평가한다. 기업성은 ‘재무관리’ 항목에서 중요하게 평가한다. 박근혜 정부 때는 ‘사회적 가치’와 ‘재무관리 항목’의 비중이 1 대 2였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5 대 1로 바뀌었다.

공기업 행태는 경영평가에 크게 좌우된다. 마음만은 국민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을지라도, 평가점수에 의해 성과를 인정받고 급여가 달라지니 어쩔 수 없다. 공공성, 아니 정확히는 공공성으로 포장한 정권의 정책목표를 강조하면 수익성은 떨어지기 쉽고 비용 절감 노력은 옅어지기 마련이다. 이명박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공기업 부채가 대폭 늘어난 데는 정부 정책목표 달성에 동원되느라 어쩔 수 없이 진 빚 탓이 크지만, 거기에 편승한 느슨한 경영도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경영평가 개편작업을 진행 중이다. 초점은 수익성 강조이다. 이전 정부에서 사회적 가치를 너무 중시한 탓에 수익성을 경시했으므로 이는 필요하다. 덧붙이자면 본래 의미의 공공성 회복, 즉 국민에게 질 높은 제품을 효율적으로 제공하는 것도 강조했으면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40년 전 경영평가를 도입한 목적인 ‘자율적 경영 보장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구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사족. 경영평가는 기획재정부가 담당한다. 비록 정치권의 주문 때문이라고는 해도 어쨌든 공기업 경영이 왜곡된 데는, 그렇게 경영평가를 설계하고 운용한 기재부 책임이 크다. 나는 기재부가 정치권의 요구에 좀 더 의연했으면 좋겠다. 끝까지 거부할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 아울러 공기업을 존중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국민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의욕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인지상정이다. 내가 존중받아야 남을 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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