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역업체 다루듯’…공공기관들, 정규직화 자회사 간섭 여전

조해람 기자

이수진 의원실 ‘자회사 직고용 86곳 실태’ 분석

<b>“안전인력 충원을”</b>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4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용역형 자회사·다단계 민간위탁 지하철에 역무원과 안전인력 충원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문재원 기자 mjw@kyunghyang.com

“안전인력 충원을”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4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용역형 자회사·다단계 민간위탁 지하철에 역무원과 안전인력 충원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문재원 기자 mjw@kyunghyang.com

‘용역 계약’ 자회사에 인력 근태·용모 등 ‘독소조항’ 요구
계약대금 미지급·쪼개기 복수계약 등 기존 관행 유지도
‘낙찰률 임의 적용 금지’ 정부 방침 어기면서 계약 맺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에 따라 많은 공공기관이 청소·경비 등 용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를 자회사를 통해 고용했다. 그러나 상당수 기관은 아직도 용역계약을 맺을 때처럼 자회사 직원의 노동조건 등에 간섭하는 ‘독소조항’을 유지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계약대금 지급이나 노사 상생 방안 마련, 자회사에 비용절감을 강제하는 ‘낙찰률’ 제도 개선 등에는 소홀했다.

4일 경향신문이 한국노총 공공산업노조연맹(공공노련)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비례)와 함께 고용노동부의 ‘2021년 자회사 운영실태 평가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17.4%인 15곳만 A등급을 받았다. B등급 19곳(22.1%), C등급 21곳(24.4%), D등급 22곳(25.6%), E등급 9곳(10.5%)이었다.

공공기관들은 2017년 7월부터 추진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3가지 방식(직접 고용, 자회사 고용, 사회적기업 등 제3섹터 고용)으로 공공기관 소속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했다. 이번 평가는 자회사 고용을 선택한 기관에 대한 두 번째 평가로, 2020년 9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자회사 직고용을 하는 86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 “그 사람 나오지 말라 해요”

분석 결과 널리 알려진 공공기관들조차도 자회사와 용역계약을 맺으며 자회사 노동자의 노동조건이나 자회사의 경영·인사권에 지나치게 간섭하고 있었다. 평가자들은 모든 기관에 대해 긍정적인 부분과 미비한 부분을 함께 지적했다. 공공노련은 평가 대상에 오른 노조 소속 사업장들의 계약 내용을 직접 들여다보고 구체적인 사례를 확인했다.

한국남동발전은 자회사에 인력의 인적사항과 인사기록, 이력서 제출을 요구했다. 노사분규가 발생할 시 계약 해지를 할 수 있다고 하기도 했다. 한국동서발전은 자회사 인력의 휴가 일수를 모기관과 협의하도록 하고, 자회사 인력의 근태를 기재한 용역보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자회사는 엄연히 ‘다른 회사’임에도 마치 과거 용역업체 비정규직을 다루듯 관리해 온 것이다.

자회사 직원의 교체 여부나 용모까지 모기관의 손아귀에 든 예도 있었다. 한국도로공사와 한국동서발전은 모기관이 자회사 노동자 교체를 요구하면 자회사가 노동자를 교체하도록 하는 조항을 뒀다. 한국석유공사와 한국수자원공사, 한국지역난방공사는 자회사 직원의 ‘용모 단정’ 조항을 넣는 등 복무규율까지 간섭했다.

■ ‘감 놔라 배 놔라’ 하며 책임은…

간섭은 과도하지만 계약대금 지급, 계약 안정성, 노사협의회 등 상생 방안은 부실했다. 정부는 공공기관이 자회사에 계약대금을 지급할 때 ‘분기별 선지급’ 방식을 권고하고 있다. 후지급 방식은 질병·사고·휴가 등으로 빠지는 노동자의 인건비를 제하기 때문에 자회사가 안정적으로 경영을 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기별 선지급 방식으로 자회사에 계약대금을 지급하는 모기관은 20곳에 불과했다. 35곳은 월별 또는 분기별 후지급 방식 등 기존 관행을 유지했다. 노무비 책정에서도 시중 노임단가 100%에 미달한 경우가 44곳으로 절반을 넘었다. 계약금액 대비 이윤 비율을 최대 한도인 10%까지 보장하는 모기업은 10곳뿐이었다.

86개 기관 중 70.9%인 61개 기관은 사업의 ‘쪼개기 계약’을 방지하기 위한 ‘단일통합계약’을 채택했다. 보통 자회사들은 공공기관이 필요로 하는 사업 분야(청소, 경비, 시설관리 등)를 모두 제공하는데, 단일통합계약은 이 모든 분야를 한 업체와 계약해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체 통합이 아닌 ‘분야별 복수통합계약’으로 전환한 곳도 17곳으로 적지 않았다. 노동부는 복수통합계약으로 전환한 17개 기관 중 16개 기관에 ‘복수통합계약을 택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평가했다. 기존의 쪼개기 복수계약 관행을 유지한 기관도 8곳이었다.

자회사 직원들의 노동조건이나 계약 관행을 논의할 수 있는 ‘모·자회사 노사 공동협의회’도 턱없이 부족했다. 분석 대상 86개 기관 중 노사 공동협의회가 ‘매우 양호하다’거나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은 기관은 31개(36.0%)에 불과했다. 노사 공동협의회 운영규정을 마련한 기관도 21개(24.4%)뿐이었다.

■ 수의계약인데 ‘낙찰률’ 적용

자회사가 스스로 직원들의 노동조건이나 경영환경을 개선하려 해도 쉽지 않다. 우선 공기업들이 가진 자산에 비해 지나치게 적은 자본을 자회사에 투자하고 있다. 2021년 공기업 평균 자산은 27조원인데, 공기업이 정규직화 자회사에 출자한 자본금 평균은 자산의 0.004%인 12억4000만원에 그쳤다. 이 의원은 “자본금이 적다 보니 조그만 적자만 발생해도 재무 부실기업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여전히 많은 모기관들이 자회사와 계약할 때 기존 용역업체 경쟁입찰 때처럼 ‘낙찰률(예정가격 대비 낙찰가격의 비율)’을 100% 이하로 적용, 자회사가 예정가격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하도록 강제하는 문제가 있다.

용역업체 경쟁입찰 시절 낙찰률은 ‘단가 낮추기’ 부작용을 낳았다. 이에 정부는 자회사와의 계약을 수의계약으로 하도록 하고 낙찰률 임의 적용을 금지했는데, 여전히 많은 자회사가 수의계약에서까지 기존 관행인 낙찰률을 임의 반영하고 있다. 조사 결과 86개 기관 중 24개(27.9%) 기관만 예정가격 100% 이상으로 자회사와 계약을 맺었다. 낙찰가격이 예정가격의 87.9% 초과 100% 미만인 경우가 32곳(37.2%)이었다.

자회사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예정가격보다 낮은 비용을 제시하게 된다. 결국 자회사 직원의 처우와 경영환경에 쓸 돈도 줄어드는 것이다.

공공노련은 “전체적으로 전년도에 지적받은 사항들에 대해 개선 노력을 했던 것으로 보이나, 그 수준은 모기관의 경영 상황 등에 따라 크게 차이가 있었다”며 “특히 낙찰률, 일반관리비율, 이윤비율 등 계약금액에 영향을 미치는 금전적 지원 노력에서 차이가 크게 나타난다”고 평가했다.

이 의원은 “용역업체가 아닌 진정한 공공기관의 자회사가 되기 위해서는 경쟁입찰 시에나 적용하던 관행인 낙찰률 적용을 폐지해야 한다”며 “궁극적으로는 (사업과 계약으로 묶인) 지금의 용역대금 지급체계보다 자회사가 직접 필요 예산을 정해 모기관에 요청하고, 모기관이 심의해 승인하는 예결산심의제로 가야 자회사가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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